인생은 한폭의 도화지에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기왕 그리는 것 흑백으로 놔두기엔 참 아쉬워 여러 색과 붓질로 열심히 덧칠해본다.
그런데 최근들어 통 모르겠는거다, 이 닥치는대로 그려낸 추상화스러운 것이 내가 생각한게 맞는지.
추상화의 추상화스러움으로부터 본연의 목적을 뾰족히 도출해 내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없지만, 적어도 이것은 내 그림이 아닌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여러 목소리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고 그 본연을 희미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성취와 명예', '소확행', 'YOLO', '갓생'. 모두 본래 목표보다는 당장의 붓질과 색에 집중하게끔 한다.
마냥 듣기 싫은 소리들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멋져부린 스트로크가 아니라 나의 그림이니까.
세기의 명화가 아닌, 스스로 떳떳하고 만족하는 그림 한폭 남기고가면 그저 그것으로 충분하겠다는 서른 초반의 결심을 다시금 복기해 본다.
그 목표에 부합하는 색과 선을 정녕 더하고 있느냐라고 반추해 보면, 요 요란한 추상화의 결보다 복잡한 것에 머릿속이 사로잡힌다.
성취감, 타인의 시선, 자존심에서 비롯된 응어리들이 뭉쳐 교차하고, 어지럽게 만든다.
남이 아닌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을 기어코 마련해 반추해보며, 소심하게 다시금 되뇌어본다.
불필요한 색과 붓질은 덜어 낼 것.
그게 사람, 일, 더없는 성취일지라도 마지막 순간에 내가 기억할 떳떳한 한 획이 맞을지 고민할 것.
"있잖아 폴." 그녀가 말한다. "가끔씩은 긴장을 푸는것도 괜찮아. 그건 죄악이 아니잖아."
"뭐가 죄악이 아니야?"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 빛과 물질에 대한 이론 -
그리고 그 놓아주는 과정을 충분히 만끽하며 행복할 것.
내 그림의 추상성을 인정하고 하루하루 주어질 출발점에 집중할 것.
그 나름의 방향성을 믿고, 현실의 흔적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말 것.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현실이다.
당신은 항상 어디에선가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 현실의 모든 흔적을 지울 수는 있다.
- 파블로 피카소 -
그리고 매순간 출발하는 여정을 충분히 만끽하며 행복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