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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고싶다. (눈부신 안부 - 백수린 저)

It's FInn's Place 2024. 5. 15. 23:47

정말 얼마만에 읽어본 소설일까? 그 궁금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소설 300장에 걸쳐 수놓인 수많은 아픔의 순간들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먹먹하게 한다. 정말 신기한 경험인걸!

왜인지 반추를 해보자니 올해, 그리고 요즘 유독 고민하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 주는 기쁨만을 묘사하는것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수록 사랑은 결코 로맨틱 코미디에서 봐온것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수 많은 아픔을 겸비한 무언가가 아닐까 곱씹어본다.

선자 이모의 KH에 대한 사랑, 수많은 아픔 속에서도 한평생 지켜온 자녀에 대한 사랑, 시한부 선자 이모를 지키기 위한 아이들의 사랑, 주인공의 언니에 대한 사랑... 수 많은 사랑을 나열해 놓고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아픔과 상실감임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사랑은 결핍이 있는 누군가에게 느끼는 아련함에서 비롯된 배려 혹은 동정심인 것일까? 혹은 인간의 유한함에서 비롯된 한계인 것일까? 지키지 못한 수 많은 것들 앞에서 사랑은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주인공이 우재를 만나러 가는 결말을 보며,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보게 되었다. 사랑은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구원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인간은 그래야 살아갈 수 있고, 주인공처럼 결국 자신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끔 만든다고 믿는다.

다만, 소설을 보며 더욱 명확해진건 '우리는 사랑을 받을때가 아니라, 사랑을 줄 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구원의 대상인 구원의 주체, 즉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한수에 대한 미안함에서 비롯된 주인공의 거짓 편지, 그로부터 비롯된 죄책감으로 주인공은 근 30년간 사랑을 거부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의 더없는 유한함, 하지만 그렇기에 더없이 완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항상 사랑을 고민하고 또 간직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최선을 다해 지켜낼 것이다.
그게 바로 내 구원이니까.